한국 교회 내 여성 차별, 양성 불평등, 여성목회자 배제 문화, '사모' 경험과 나의 목회 비젼에 대하여

한국 교회 여성차별, 양성 불평등의 문제를 생각하며...
한국 교회 문화에서 '사모'라는 '비' 직분에 대하여...
그리고 나의 목회 비젼과 테마에 대하여... "다시 태양이 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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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현재, 마음 속에 풀뿌리처럼 심은 세 가지 비젼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한국 교회 내에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이고,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여성차별적, 가부장제적 권위, 차별, 배제의 문화에 대하여 도전할 수 있는 개인적, 영성적, 상호교류적 역량과 내/외적 권위을 키운다는 것이다. 

교회는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적 '시스템'에 대하여, 돌을 던지며 수면 위의 파랑만을 일으킬 것이 아니라, 그 시스템의 수심 깊이의 '전체', 수면을 떠받치는 물의 부피와 흐름과 그 무거움과 그 끝이 없는 시스템 전체에 직접 자기의 몸을 집어 던져서 들어가 그 부피의 크기와, 끝이 없는 흐름과 싸우고 헤엄칠 수 있어야 하는데, 나는 한국 교회의 현재의 지독히 재미없음과 부패와 혼돈과 억압적 문화를 떠받치고 있는 '골격'이 배타적, 배제적, 차별적, 남성 연장자 중심의 가부장제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한국 교회를 엑스레이를 찍어본다고 하자. 골격, 그 뼈대가 찍힐 텐데, 그것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렇다. 한국 교회를 떠받치는 그 골격, 그 뼈대는 남성 연장자 목회자 중심의 닫힌 체계, 여성에게는 사다리도 없는, 네트워크로의 초대가 이루어지지 않는 군대문화의 형태를 띄고 있는 한국형 가부장제이다. 그리고 이 군대문화는, 지난 독재 정권과 군대의 위계적/억압적 문화와 비민주적 폭력의 협박 속에서, 사회 곳곳의 영역에서, (목회 현장에서도 마찬가지) 시위와 새로운 목소리를 차단하고, 상위 위계에의 복종 또는 순종을 요구하고, 여성의 창의성과 자유로움과 권위를 허락하지 않고 '차별적' 조직의 형성이라고하는 특별한 방향을 만들어내는, 한국인이 모두 공유하는 집합적 의식이 되고 말았다... 더 확장하면, 한국이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가겠다며, 가난과 없음을 이겨보겠다고 모두가 합의를 던져 준 경제개발지상주의는 한국 정치에서 독재정권이라는 무서운 역사를 낳았을 뿐 아니라, 이것은 큰 그림에서 전세계를 서서히 달구고 이제는 정치에 문외한인 평범한 사람들조차 수긍하지 않을 수 없고 인식하게 된 신자유주의라는 용광로안으로 한국민, 한국 전체를 현재도 자발적으로 계속 걸어 들어가게 하고 있는 것인데,

한국 교회의 여성이 희생되고, 배제되고, 헌신이 요구되고, 조용히 있도록 억압하는 불평등하고 억압적인 문화는 이 전체의 큰 틀거리 하에서 계속 연료가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큰 전체의 성장주의적, 억압적 시스템 안에서, 아파하며 희생된 약자들, 주변화된 것들과 사람들이, 갖가지의 색깔로, 각 영역에서, 그 깊이와 수면에서 얼굴을 들며 일어나는데,

웬일인지 한국 교회내 여성 불평등의 문제는 지나치게 조용하다는 것이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그리고 그 불편하게 만드는 그 침묵에 내가 있다는 것이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든다.

교회내 여성 차별, 성차별, 양성 불평등이라는 악이, 아픔이, 여전히, 강력한 배제의 힘으로 작동하고 교회라는 세월호를 계속 전진하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거울처럼 잘 비추어주는 극명한 사례 영역 중 하나는 교회내 '사모'라고 하는 성경적 근거도, 그리스도교적 역사적 근거도 찾아볼 수 없는 이상한 직분과 사모들의 우울증이다. 한국교회의 기형적인 형태가 정상인것처럼, 그래서 계속 전진해도 되는 것처럼, 모두가 착각하고 있거나 믿게 하려고 하는데, 사회의 계속적인 변화 속에서도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위로를 찾거나, 지속적으로 위로를 찾게 하기 위하여, 아무도 건들지 않는 아주 깊은 곳에 있는 악은 변장된 위로처인 가부장제, 그 질서가 주는 위안이다. '그래, 이렇게 따뜻한 가부장제라는 미덕이, '사랑'과 희생, 헌신과 보살핌이,아직도 한국 교회에는 있다'라는 위안. 혹시 그 위안 때문에 모두들 '사모'라고 하는 성경적 근거도 없고, 그리스도교적 역사적 근거도 없는, 목회자도, 평신도도 아닌, 남편의 '근처', '그림자', '달'이라고 하는 '섬김'이라는 미덕을 껴안아 감당하도록 기대받고 기대하며, 혼돈에 빠지게 되는 사모라는 한국 교회의 가부장제의 희생처에 대하여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지만 내가 꿈꾸는 비젼 중 하나는, 사모가, 또 교회내 여성이, 특별히 교회 내 목회자라고 하는 아름답고 당당한 길을 걷고자 하는 젊고 건강하고 영감 있는 여성이, 한국 교회 문화에서 배제되고 차별되고 권위를 부여받지 못하는 존재들이 '다시 태양이 되기를 꿈꿀 때' 그 변형적 스파크는 한 개인이 다시 부활함에만 미치는게 아니라, 그들이 태어난 한국 교회 문화를 집합적으로 변화시키는 역량으로 기여할 것이라 믿는 것이고, 이것은 내 목회의 근간을 이루는 테마이다.

다음의 경우는 지난 8년동안 (나의 성인시기, 짧은 한국 개신교회 경험에서 시작된) 내가 한국 교회의 안팎에서 (한국의 상황과, 캐나다에 이주해 온 목회자 부부의 상황을 포함하여) 많이 본 것인데, 남녀 부부가 함께 신학교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전도사 일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고 남편이 안수를 받거나 유학을 하거나 하면, 그 아내는 목회자로서의 역량이 얼마나 뛰어나거나 자신이 얼마나 자발적으로 그 삶의 방향을 수용하고 사랑하느냐, 아니면 속에서 속을 끓으며 아파하는데까지 이르느냐와 상관 없이, 목회자로서 성장하는 길을 계속 걷는 것을 중단한다.

또, 신학교에 입학하여 결국 졸업에까지 성공적으로 이르는 남녀 학생의 비율과, 졸업한 학생들 중에서도, 그 이후에 밟아나가야하는 지난한 여정 중, 남성중심적인 제도적/비제도적 방해하는 장치들의 간섭에 걸려, 실제로 목사 안수를 받아 목회자로서 목회지를 가지고서, 스스로 부여한 '내적' 권위와 '부여 받는' 제도적 권위를 가지고 당당히 하느님의 일을 수행함에 이르는 남녀의 비율은 심각한 차이를 드러낸다는 사실, 그리고 개별 교회, 도심 목회지에서 실제로 목사라는 자기 직분을 걸고 목회하는 여성목회자의 행보를 찾고 함께 하기란 어렵다는 사실도 반드시 언급되고 도전되어야 한다.

한국 교회내의 성차별, 양성 불평등의 문제는 영어식 표현으로 하면 '방 안의 코끼리이다.' 너무 크고, 분명하고, 자기 부피와 파워를 가지고 있어 분명히 코끼리만큼 큰데도, 도무지 무시할 수 없고 '보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없는 문제인데도,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아마도 자기 자신의 밥줄이 걸려 있는 문제라 쉽게 말하기 어렵거나, 자신의 남편 목사를 위태롭게 할 수 있거나 (가족은 생계 수단을 가지고 살아 남아야 하므로), 일단 생존하기 위해서는 소리를 내서는 과정 전체를 더 어렵게 하고 어지럽히고 성공을 성취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등등의 불안, ... 내가 느꼈던 그 모든 것들...을 비판한다면, 약자에 대한 비판이 되고 말테다. 조직적, 제도적, 집합적 무의식적, 의식적 파워가 너무 커서, 실제로 그 내부에 있는 사람들이, 또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고, 도전하고, 영감을 주는 것을 두려워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을 비판해야 한다.

힘있는 여성들이, 여성 목회자가, 정치와 사회와 경제에 대하여 강력하고 권위 있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그 자체로 더할 나위 없이 희망을 주고 용기를 준다. 이에 덧붙여 나는 그 용기가, 그 힘이, 여성이, 여성 목회자가 '자기 자신'에 대하여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도 더 깊이 들어간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여성으로서의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소유'하며, 손에 쥐어서 던져 파랑을 일으키고 시스템에 도전하자.

내 작은 바램은,

내가 비록 현재 캐나다에 거주하고, 캐나다에서 목회하지만,
내 마음과 영혼의 본뜻과 열정과 애탐과 슬퍼함이
한국에 까지 닿아서
내가 캐나다에 있더라도, 한국과 한국 교회의 여성의 역사를 쓰는 하나의 작은 목소리가 되기를, ....
그런 비젼과 테마를 가지고
캐나다에서 목회하며 '다시 태양이 되기 위한' 전진을 계속 하는 것이다.


"태양의 사모" 팟캐스트를 준비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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